용인향교

HUFS경기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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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향교는 기흥구 언남동에 있으며 조선 전기에 세워진 향교이다. 용인향교는 1400년(정종 2)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나 용인이란 지명이 1413년(태종 13)에 생겼으므로 그 이후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현재 용인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인향교는 19세기 중반의 『용인읍지』에 따르면, 자좌오향(子坐午向: 정남향)으로, 홍살문과 외삼문의 진입 영역, 명륜당과 동서재의 강학 영역, 전사청·제기고·내삼문·대성전 제향 영역이 구비되어 있었다.

건축 배치는 팔작지붕인 정면 5칸, 측면 2칸의 명륜당이 앞에 있고, 맛배지붕인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 형태였던 것으로 보아 일반 향교 건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894년(고종 31)에 원래(마북리 구교동으로 추정)의 위치에서 현 위치로 이전된 후로 문묘의 향사만 받들어왔다. 2011년 현재 교육관에서 한자 교육, 예절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현(縣) 단위였던 용인은 생원, 진사시인 소과(139명)와 대과인 문과(53명)에서 급제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으로 알려졌다. 용인향교 역시 정몽주와 조광조를 받들고 있는 충렬서원과 심곡서원 및 도암 이재 선생의 한천정사(寒泉精舍)와 함께 급제자 배출에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말 한수 이남에서 잘 알려 진 맹보순(孟輔淳)이 향교에서 후학을 가르쳐 김혁(金赫), 이영선(李英善), 어대선(魚大善) 같은 독림운동가를 배출하였다. 20세기 초에는 역시 맹보순과 학부대신을 역임하였던 이도재(李道宰)와 함께 명륜학교를 열어 용인 중등교육에 효시를 이룬 곳이다.[1]


용인향교색인

출처

  1. 정양화, 용인향토문화연구소장


용인시 향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