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역 향교, 서원, 공간간 건축적 위계성에 관한 연구

HUFS경기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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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1장 서론에서는 연구의 배경 및 목적과 연구 방법, 범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장은 조선시대의 향교, 조선 이전 유학 교육시설의 변천과정, 삼국시대의 유학교육시설, 고려시대의 유학교육시설, 조선시대 향교건축, 조선시대 서원의 발생과 변화, 경기지역의 향교와 서원의 지리적 정치적 사회적 특징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3장은 전통 구성원리 속 위계와 질서, 4장은 경기지역 향교와 서원의 공간간 위계에 관해 설명한다.

내용[편집]

조선시대 향교는 유교이념을 보급하기 위해 세워진 관학으로 개국과 함께 전국의 크고 작은 고을에 건립되었다. 이후 관학이 부패하여 향교 내 교육이 지지부진해지자 16세기 중엽부터 새로운 사립교육기관, 즉 서원이 등장하였다. 향교와 서원은 크게 교육을 위한 강학공간과 유학의 선현들을 봉사하기 위한 제향공간으로 나뉜다. 그간 이루어진 서원 및 향교에 관한 연구는 현황파악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본 논문은 강학공간과 제향공간의 상관관계에 주목하여 그 위계적 차별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선행적으로 기초자료를 수집하였고, 수집된 정보를 기반으로 이후 현장조사를 진행하였다. 기초자료 수집과정 중에서 도면을 구하지 못한 대상지에 대해서는 실측조사를 진행하였다. 현장조사는 크게 실측조사와 사진촬영, 그리고 담당자 및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이상의 과정을 통해 수집 된 자료들은 기초자료들과 더불어 종합적인 분석의 과정을 거쳤다. 다만 현대에 남아있는 향교, 서원의 모습은 교육적인 기능이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고문헌을 통해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변화추이를 고려하는 과정을 거쳐야한다. 향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 인종5년이나, 이전에도 이미 학교형태의 교육기관이 존재하였다. 단 이때부터 고려 말까지는 ‘廟學同宮’의 시기로 제향공간과 강학공간간의 확실한 영역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태조 때 수령의 직무로 ‘學校興’이 추가되었고 늦어도 성종 17년(1486년)까지는 ‘一邑一校’ 체제가 완성되었다. 1530년 발간된 『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전국의 향교가 331개라고 전한다. 다만 15세기말부터 점차 쇠퇴를 거듭하여 16세기 중엽에는 중국의 서원을 모방한 ‘백운동서원’이 건립되었고, 향교의 교육기능은 마을 내, 상징적으로 자리하는 선현봉사기구로 전락하였다. 서원 역시 건립 초기에는 학문적 기능에 충실한 반면, 17∼18세기에 이르면서 향사우위의 시대에 돌입하게 되었고,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본래의 교육기능은 점차 쇠퇴하여 가문과 당파의 이해관계에 따른 기관이 되었다. 이에 흥선대원군은 남설 되어있던 서원을 47개소로 통폐합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향교, 서원은 유학 이념인 敬이 표출된 공간으로 철저한 위계를 가지고 있다. 경이라는 것은 유학 본연의 학문 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갖추어야 할 밑바닥 정신으로 제시되는 덕목으로 현대적으로 굳이 풀어보자면 공경함, 엄숙함, 삼가야 함 정도로 풀이된다. 이러한 뜻이 발현된 유교 건축물들은 대체로 화려함과 번잡함을 피하고 정연함을 잃지 않은 채 실용성과 엄숙함을 갖추고 있다. 향교와 서원은 교육적인 시설임에도 한결같이 선현에 대한 봉사(奉祀)시설을 갖추고 있어야한다. 이는 유학의 학문적 경지가 마음가짐에서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지가 표출된 것이 ‘廟’ 공간으로 가장 위계가 높은 공간을 형성한다. 한편 성균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소과에 합격해야 하며, 향교는 그 소과응시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강당을 비롯한 강학영역은 교학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써 교육이라는 본래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장소로 廟공간보다는 위계가 다소 낮지만 일상적인 행위가 일어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다양성과 실용성을 갖추고 있다. 본 연구는 왜란, 호란과 특히 한국전쟁을 통해 원형의 모습을 상당수 잃어버린 경기지역 향교들의 기존 모습을 최대한 추적하여 본래 배치에서 파생되는 위계에 관해 고찰하였다. 특히 16세기에 이르면서 강학영역과 제향영역이 확실히 구분되는 시기로 건축적인 위계질서들이 자리 잡았다. 특히 경기서북부에서 유독 보이는 양재와 강당의 같은 횡 축 배열과 전당후재, 전재후당으로 대표되는 배치관계에 대한 고찰을 통해 경기 향교의 특징을 고찰하였다. 반면 경기지역의 서원들이 여타 삼남지방보다 주목되는 것은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바로 건축에서 표출된다는 점이다. 삼남지역의 사액비율은 경상도 32.4%, 전라도 41.6% 충청도 55.0%로 나타나는데 경기지역은 90%에 육박한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러한 성향은 정쟁의 흐름에 따라 설립되는 서원들의 색깔까지 정해버렸다. 한편 같은 기호사림의 영향권인 호남권역은 그들의 학문을 발전시켜나가는 장소를 제공하였으며 근간을 이루었다. 그러나 경기지역은 여타 학파들과 격전의 장소로써 그들 통치의 정당성을 드러내기 위한 서원들이 다수 건립되었다. 따라서 같은 기호사림의 영향권이지만 경기지역이 도성과 인접해 있는 지리적인 영향 탓으로 건축적으로 다소의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분명히 제향위주의 서원만은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도봉서원과 석실서원, 충렬서원, 심곡서원 등은 강학위주 서원들로 장수와 유식의 기능을 두루 갖춘 교육공간이었다.

저자[편집]

이종찬

출처[편집]

http://academic.naver.com/view.nhn?dir_id=1&unFold=false&sort=0&query=%EC%B6%A9%EB%A0%AC%EC%84%9C%EC%9B%90&gk_qvt=0&citedSearch=false&field=0&gk_adt=0&qvt=1&doc_id=80084897&page.page=1&ndsCategoryId=10515